해외여행

마지막날- 石林과 金殿

0807mb 2008. 1. 4. 22:30

백련온천은 개장시간이 10시반이라는데 우리시간 때문에 특별히 10시에 개장을 요청하여 입장시켜 주었다.

특별히 온천을 좋아하는것도 아닌데 어제 온천을 했는데 또 온천을 하게 되었다.

패키지 여행이라는게 마음대로 일정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온천을 마치고 점심때쯤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섰다.

 

석림으로 향하여. 중간에 점심을 먹고 이족 마을인 석림에 도착했다.

곤명에서 약 12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1,750m에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으로 석회암이 지각 변동에 의해 솟아 오르고,
오랜 시간 침식 작용에 의해 돌들로 숲을 이룬듯한 장관이 되었다한다. 1982년 중국 국가급 중요 관광지로 지정 되었으며, 중국 4대 경관중 하나로 꼽힌다한다.

 

도착하기전 가이드가 미리 주의를 주었다. 이족 마을이기 때문에 석림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족들이고,

아가씨와 아줌마의 구별은 쓰고있는 모자에 달린 뿔모양 으로 한다고- 뿔이 누운 모양이면 아줌마이고 서 있으면 아가씨라나?

그런데 아가씨의 그뿔을 만지면 그 아가씨를 책임져야 한다는 뜻인데 꼼짝없이 잡혀가서 석달을 열심히 농삿일을 해야하고 일하는게 시원찮으면 거두지도 않는다나?   

그러니 붙들려서 귀국하지도 못하니 남자들은 조심하라는 당부를 한다. 중국에 남고싶으면 만지란다.

입구에서 전동차로 석림까지 이동하는데 이족 아가씨가 전동차 운전을 하였는데 남자들은 모두 모자의 뿔모양에 눈이 가 있었다.

 

 대석림 입구에서... 100만개 이상의 석봉, 석주, 석순등이 숲을 이룬 곳.   이곳 주민들이 농사를 짖기 위해 석림을 폭파할 거라고 중앙 정부에 알리자

 정부에서 적극 나서서 말리고 관광지로 개발했다한다.

   

 칙칙한 바위에다 날씨마져 흐렸다. 3일낮 동안은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 마지막날 석림에선 잿빛이었다.

 

 우리의 가이드. 찍을려고 찍은건 아닌데 찍혀버렸다. 26살의 조선족인 이 총각은 흑룡강성 하얼빈시에서 곤명까지 와 가이드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곤명가기보다도 더 먼 거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동생과 어머니 세식구가 살았는데 어머니께선 10년전에 우리나라에 와서 한번도 귀국하지 않아 10년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선 불법 체류자이다 보니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형편인것 같았다.

 정말 가슴아픈 이산가족의 모습이었다. 그곳 조선족 사회에선 거의 집집마다 한국에 돈벌러 간다고한다.

 어머니가 송금해주는 돈으로 동생과 공부를 마치고 동생도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했다.

 부모님들이 한국가서 벌어서 보내주는 돈으로 자� 잘못 나가는 아이들도 많으나 자기 형제는 착실히 살았다고.

 그래서 일행들 모두 입을모아 항상 조선족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족 아가씨와 함께 한컷

 

 이족들이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모습

 

 여긴 소석림. 규모면에서 대석림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초원도 있고 하여 조금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위쪽에 바위가 절단된 것처럼 보이는건 바닷물이 오랜세월 저 높이에서 머물러 있었던 까닭이라 한다.

 

 

해가 지는 시간대에 들린 금전. 쿤밍에서 북동쪽으로 7키로 떨어진 곳에 있는 도교 사원으로 원내의 주전은 기단을 제외하고 모두 운남성의 특산인 동으로 만들었다한다.

그래서 동와사(銅瓦寺)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명나라의 장수였던 오삼계는 이자성이 난을 일으키자 청나라를 세운 강희와 손을 잡고 이자성의 난을 평정하고 청나라의 장수가 되었다한다.

중국역사에선 두나라의 장수를 지낸 오삼계에 대하여 비난도 분분하지만 암튼, 이자성의 난을 평정하는 중에 자기의 애첩인 전원원을 이자성에게 빼앗겼는데,

전세가 역전되어 이자성이 쫓기는 신세가 되자,전원원을 죽일려고했다한다.

전원원은 기지를 발휘하여 전원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삼계가 혼신을 다해 이자성을 죽일 것이지만 살아있으면 전원원을 만나고 어쩌고 하면서 시간을 벌것이니

살려두는게 유리하다고  설득해서 목숨을 부지하고 오삼계와 상봉하였으며 후에 오삼계의 세력이 확장되는걸 염려한 강희가 운남성의 통치권을 오삼계에게 주었다한다.

그 시절에야 권력있는 남자에겐 애첩이 여럿이었으니 이에 전원원이 오삼계를 떠나 절로 들어가고 싶다고하니,

오삼계가  간곡히 만류하였으나 굳이 떠나기를 원하자 전원원을 위해 지어준 절이 이 금전이라고한다.

오삼계는 운남성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병사하였으며 아들이 물려받았으나 그 아들은 강희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는 역사얘기를 가이드가 전해주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이자성의 난에 대하여 자세하게 주변 이야기까지 곁들여지니 매우 흥미로웠다.

    

 전원원이 좋아하였던 나무라는데 수령이 390년이라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청나라 초기니 대충맞나?

 

 여기도 봄이다 목련도 피었고 저~기 산당화도.

 

 특이하게 생긴 나무. 나무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었지만 한자실력이 딸려 해독은 못하고.

 

 금전을 끝으로 여행은 끝났다.

 곤명시내도 퇴근시간이 되니 교통 정체가 말이 아니었다.

 자전거 전용도로로 전동자전거가 흔하게 보였다. 기름 한번넣으면 1주일을 간다하니 옆지기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바람직한 이동수단이라고. 6~70만원 정도하는데 전동자전거 도둑이 극성이라한다.

 곤명에서 훔쳐선 저 멀리 다른성에 가서 팔아버리면 속수무책으로 잡을도리가 없는데 언젠가 자전거 큰 도둑을 잡고보니 70대 할머니여서 전 중국인민이 놀랐단다.

 그리고 조사를 했더니 그 할머니가 가진 고급 외제차가 5대나 있어서 또한번 놀랐다나?

 곤명시내 공항가는 길에 실크 가게와 보이차 판매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저녁으로 버섯 샤브샤브를 먹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23:55분발 대한항공편에 올랐다.

 KAL을 보니 우리의 날개라는 말이 실감이났다. 우리것에탓다는 어떤 포근함 같은것.

 5시간의 비행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피곤하고 힘든 일상이 나를 마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