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낭, 호이안, 후에 3일차
여전히 흐린 날씨. 사흘내내 맑은 날을 보지 못했다.
쨍하면 덥겠지만 푸른 하늘은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되는데...
조식후 후에로 이동하는 중에 하이만고개에 내렸다.
날씨가 좋으면 내려다 보이는 바다 경치가 정말 좋다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월남전의 상흔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차창 밖으로 특이한 지형의 마을을 담아보았다.
파도라도 치면 아니면 해일이라도 나면 가옥이 휩쓸릴 것만 같은 마을이다.
마지막 왕인 카이딘 황제의 능. 왕릉으로는 제일 큰 규모라고 한다.
이 능은 20세기초 베트남 건축 예술을 대표하는 곳이라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왕으로 폭군이었지만 사후에 국민들을 먹여살린다고들 한단다.
폭군이라 공덕비는 훼손되었고
스스로 시신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지하 18미터 깊은 곳에 매장해 달라고 했다니..본인도 폭군임을 인정한 셈?
1916년~1925년 재위
사망 3년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사후 3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계단 난간은 용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오래되지 않은 건축물이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처럼 색깔이 변해 고대 건물처럼 보이는데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색깔이 이렇게 고풍스럽게 변했다한다.
내부 벽은 이렇게 도자기와 유리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카이딘 왕릉을 구경하고 후에 궁중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의 가장 행복한 식사였다.
현지 가이드의 고향으로 가이드가 추천한 매뉴라고 했다.
때마다 야채 볶음류가 나왔는데 이 곳의 청경채 볶음이나 다른 곳의 야채볶음이나 다 맛있었다.
천장이 높고 깔끔한 식당이 마음에 들어 식당 외관도 올려본다.
점심을 먹고는 후에성을 둘러보았다.
워낙 넓어 전동카를 타고 돌아야했다.
우리나라의 궁전 보다는 규모가 훨씬 컸다.
자금성은 얼마나 클려나?
우리나 베트남이나 중국이나 모두 엇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다보니 궁중전담 현지인 가이드가 잡혔다.
맨왼쪽 아주머니로 걸걸한 입담에 관광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의 종묘와 같이 역대 왕의 신위를 모셔놓은 곳.
우리와 달리 지붕이 이중 구조다.
후에성을 관람하고 나와 티엔무 사원으로 이동하였다.
절 입구에 있는 팔각형의 7층 석탑. 탑의 각 층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불상은 흐엉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티엔무사원은 불교 탄압에 맞서 기름을 부어 소신공양을 한 틱강득 스님을 모신곳으로,
불교부흥의 계기가 되었다한다.
흐엉강...발음하기 어렵다.
차로 이동 도중 담아 본 주택.
베트남은 도로에 접한 주택이 세로로 길게 생겼는데 국가에서 50년간 장기 임대를 해준단다.
모두 같은 넓이로 분배하는데 돈을 벌어 옆집까지 사서 넓히는 경우도 있다고..
저 넓이라면 집안 구조를 설계하기가 영 마땅찮을 것 같다.
여기 농촌시역이라 저렇지만 다낭시내에서도 저렇게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색적이었다.
벼가 저렇게 자랐다.
보통은 이모작을 하는데 삼모작도 가능하나 삼모작한 쌀은 밥맛이 떨어져 이모작만 한단다.
다낭으로 돌아와 다낭대성당엘 들렀다.
특별한 건 없고 이색적인 핑크색 성당이라는 점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고 했다.
뒤에 있는 현대식 건물이 눈에 거슬리네.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는 한강에서 유람선 타고 야경 투어를 하였다.
우리의 한강이랑 이름이 똑 같은 쏭한이다...ㅋ
쏭이 강이라하고 호이안은 쏭투먼, 후에는 쏭흐엉.
다낭의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두 건물,
뒤에 있는 건물은 시청사라고 했는데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외형의 관공서 건물이다.
용의 형상을 한 다리
여행 내내 이런 하늘을 못 봐서 아쉬움에 뱅기에서 푸른 하늘 한 컷하다.
인천에 도착하니 우리 날씨도 많이 풀려 기온이 부쩍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