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여강엔 진도 7.2의 강진이 일어났고 신시가지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고성은 강진에도 끄떡없이 그대로 남아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한다.
목재를 짜맞추어 짖는 방식으로 건축되어 지금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한다.
신시가지는 지진에 대비하여 특별한 경우외엔 3층 이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며,
건물을 지을때 난방시설도 허용되지않아 추우면 전기장판이나 개별 난방기구를 사용한다고 한다.
호텔엔 난방시설이 되어있긴해도 온도를 올려놓아도 따뜻하지가 않아 실내에서도 도우미는 코트를 걸치고 있엇다.
중국엔 에너지가 부족하여 주요소 앞엔 긴 줄을 서서 기름을 넣고 잇었으며 그것도 가득 채우진 못한다 하였다.
아직도 신시가지가 완성되지는 않았다하는데 지형상 남북으로 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펜션식으로 생긴 호텔. 호텔이 이런식으로 된 건물이 여러동으로 이루어져 각 동마다 나시족 도우미가 상주하며 관광객을 도와주고 있었다.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아침 식사를 마치고 故城관광에 나섰다.
관광객이 하도 많아 낮엔 서로 부딪히며 다녀야 할 정도라하여 일정을 아침식사후로 잡아 나섰다.
길표지판엔 한자와 동파상형문자와 영어가 섞여서 쓰여있다.
"동파문자는 나무와 돌을 보고 나무와 돌을 그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뜻과 음을(表意和表音) 겸비한 상형문자이며, 상나라 시대의 갑골문(甲骨文) 보다 원시적인 형태이다. 동파문은 1400개의 단음사로 구성되어 있지만 단어가 매우 풍부하여 세세한 감정, 복잡한 사건의 기술, 시와 문학을 표현할 수 있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상형문자이다. 나시족(纳西族)은 동파문을 이용한 역사, 철학, 천문, 종교, 무속, 의술, 문학, 예술등을 포함한 나시족 고대사회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서적 2만 여종이 전해지고 있다. 인류 문자 기원과 발전을 알아볼 수 있는 살아 있는 화석(化石)으로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고 한다.
하수구가 없는 고성엔 큰수로와 작은 수로가 하수구를 대신하고 있엇는데 사진에 있는 큰 수로는 물이 맑고 깨끗해 잉어가 노닐고 있었다.]
초록의 수초도 많이 자라고 있엇다.
여행지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잎이 변형된 꽃
화강석으로 이루어진 보도. 하도 많이 밟고다녀 맨들맨들 닳아 있엇으며 가이드의 말로는 옥룡설산의 돌을 가져다 �다고 했다.
고성시내를 조망할 수 잇는 2층집의 테라스에 올라...3천여 세대라 한다. 그냥 가정집같지만 수많은 관광용 상가와 유스호스텔, 민박집도 많다고 한다.
아들 녀석도 배낭 여행와 이곳의 유스호스텔에 묵었다 한다.
고성의 중심지인 사방가 . 이곳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木씨가 城을 둘러싸면 곤할곤 困자가 된다하여
성을 둘러치지 않고 미로와 같이 얼키고 설킨 길을 만들어 외부에서 침입해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한다.
사방가 표지판. 동파문자가 어디에나 같이 표기되어있다.
손수 머플러를 짜고 있는 나시족 아가씨. 앳된 모습의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귀여웠다.
사방가에서는 나시족의 전통춤이 계속되었는데 옆지기의 말로는 무속신앙과 연관이 있어보인다했다. 수많은 관광객의 눈길이 머물렀다.
고성관관을 마치고 백사벽화를 보기위해 나시족 마을에 들렀는데 홍매가 만개했다.
우리나라 남쪽에도 2월에나 볼 수 있는매화를...
백사벽화는 여러종교를 아우르는 의미를 담은 권선징악의 교훈을 주는 벽화라는데 촬영이 금지되어 입구만 촬영함.
백사벽화촌 안에있는 마을분들. 한가하게 마작을 즐기고 있다.
마을벽보판에 붙어있는 감사문. 찬조금을 얼마씩 내어서 고맙다는 뜻인것 같았다.
고성엔 이런식으로 마을주민 명단과 나이가 적혀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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